세상에서 가장 순수하고
가장 조용하게 오는 것이
사랑이라면
나는 너를 사랑한 것이 아니다
나는 너와 전쟁을 했었다
내 사랑은 언제나 조용하고
순수한 호흡으로 오지 않고
태풍이거나
악마를 데리고 왔으므로
나는 그날부터
입술이 까맣게 타들어 가는
뜨거운 열병에 쓰러졌었다
온갖 무기를 다 꺼내어
너를 정복시키려고
피투성이가 되고 말았다
세상 사람들은 사랑을 하게 되면
가진 것 다 꺼내 주고
가벼이 온몸을 기대기도 한다는데
내 사랑은 팽팽히 잡아당긴 활 시위처럼
언제나 너를 쓰러뜨리기 위해
숨막히는 조준으로 온밤을 지새웠었다
무성한 장애를 뛰어넘으며
생애를 건 치열한 전쟁을 했었다
상처는 컸고
나는 불구가 되었으며
단 한 번의 참전으로
영원히 네 눈 속에 갇혀버린
한 마리 포로 새가 되고 말았다
- 내 사랑은, 문정희 -
얼마 전 서랍을 정리하다가 그 사람에게서 받은 연애편지를 발견했다. 반가운 마음에 편지를 읽다가 손발이 오그라들어 나도 모르게 킥킥 웃었다. 나와 다투고 화해를 시도하면서 쓴 편지인 것 같았다. 내가 너무 좋아서 그만큼 서운함도 크다는 그의 어리광에 나도 모르게 또 웃음이 났다. 편지 쓰는 걸 좋아하지 않는 사람인데 내 마음을 풀어주기 위해 고심해서 한 자 한 자 적었을 그를 떠올리니 고마움과 사랑으로 마음이 꽉 차올랐다.
우리 연애의 시작은 참 많이도 서툴렀다. 아니 불안했다. 서로를 자주 오해했고 그래서 서운했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이 사랑했다. 그래서 더 힘든 연애였다. 당분간 시간을 갖자는 차가운 메시지에 그 길로 택시를 타고 그 사람을 찾아갔던 일. 나와 다투고 이대로 가면 끝이라는 그의 말을 무시하고 돌아섰던 일. 헤어지자는 이별 통보 후 하루를 넘기지 못하고 너 없으면 못 산다고 매달렸던 일 등 여느 연인들이 겪음직한 일들을 우리도 지나왔다. 연애 초엔 참 많이 설레었지만 그 이상으로 예민했다. 그때 나는 내가 참는 것만이 우리 관계를 유지하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늘 참았다. 나와 다르게 그 사람은 화가 나면 바로 내질러야 하는 사람이었다. 그 사람은 소리쳤고 나는 늘 침묵했다. 우리의 관계가 안정기에 접어들고 그와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다가 알게 된 건 그도 나 이상으로 우리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했다는 거였다. 외향적인 그의 입장에서 침묵으로 일관하는 내가 무척 답답했다고 한다. 아니 입은 다물고 있었지만 내 표정이 오만가지 감정을 전하고 있었기에 더 화가 났을 것이다.
우리의 사랑에 평화가 찾아온 건 그 사람이 나를 위해 노력하고 있단 걸 인정하고 고마움을 느낀 순간부터였다. 그때부터 나는 내 사랑을 숨김없이 보여주었다. 그래. 나는 내 마음을 모두 내어주고 나서야 그의 온전한 마음을 받을 수 있었다. 물론 여전히 우리의 사랑과 전쟁은 현재 진행 중이다. 하지만 이제 내 사랑은,
머뭇거리지 말고
서성대지 말고
숨기지 말고
그냥 네 하얀 생애 속에 뛰어들어
따스한 겨울이 되고 싶다
천년 백설이 되고 싶다
- 겨울 사랑 중, 문정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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