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바다가 걸어왔네
나는 바다를 맞아 가득 잡으려 하네
손이 없네 손을 어디엔가 두고 왔네
그 어디인가, 아는 사람 집에 두고 왔네
손이 없어서 잡지 못하고 울려고 하네
눈이 없네
눈을 어디엔가 두고 왔네
그 어디인가, 아는 사람 집에 두고 왔네
바다가 안기지 못하고 서성인다 돌아선다
가지 마라 가지 마라, 하고 싶다
혀가 없다 그 어디인가
아는 사람 집 그 집에 다 두고 왔다
글썽이고 싶네 검게 반짝이고 싶었네
그러나 아는 사람 집에 다, 다,
두고 왔네
- 바다가, 허수경 -
사명서를 써야 한다는 카페 공지를 읽고 괜히 마음이 심란해졌다. 어제까지 총 7편의 글을 썼지만 나는 내가 무엇을 쓰고 싶은 건지 알지 못한다. 내가 쓴 글을 10번 이상 읽었다. 조악한 문장에 부끄러움을 느낄 새도 없이 알맹이가 빠진 껍데기뿐인 7편의 글을 읽으면서 도대체 나는 뭘 말하고 싶은 건지를 내내 고민했다. 점심시간, 크림이 들어간 단팥빵과 차게 식은 아메리카노 한 잔으로 끼니를 때우면서 한 번 더 스스로에게 물었다. '넌 뭘 쓰고 싶은 거니?'
'누나! 계속 글을 써 봐. 무엇이든 좋으니까.' 남동생은 내게 글을 계속 쓰라고 했다. 안타까움으로 건너오는 동생의 그 말이 나는 참 생경하게 들렸다. 나는 단 한 번도 제대로 된 글을 써 본 적이 없는 사람이다. 다만 아주 오래 전에 좋은 글을 쓰는 무엇이 되고 싶었던 적은 있었다. 그때 나는 농담처럼 산뜻하면서도 잔잔한 울림을 주는 따뜻한 글을 쓰고 싶어 했다. 하지만 그때도 나는 내가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어쭙잖게 뭔가를 썼다. 그리고 지웠다. 지금은 아무것도 남지 않았고 무얼 썼는지 기억도 희미하다.
허수경 시인의 '바다가'를 읽을 때마다 뜻 모를 공허함으로 가슴이 시린다. 잡고 싶은 것이 있는데 손이 없다. 글썽이고 싶은데 눈이 없다.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입이 없다. 모두 다 어디엔가 두고 왔다. 그래서 할 수가 없다. 나는 꿈이 모호한 사람이다. 여전히 삶의 목표가 분명하지 못한 사람이다. 좋아하는 게 무엇이냐 물으면 대답하지 못하고 한동안 머뭇거리는 사람이다. 그러면서도 내 삶의 전부를 꿈을 이루기 위한 노력들로 꽉 채우는 사람이다. 그래서 찾고 싶다. 내가 잡고 싶은 게 뭔지. 눈 맞추고 싶은 게 뭔지. 말하고 싶은 게 뭔지. 백일동안 백 번의 글을 쓰다 보면 내가 어디엔가 두고 왔을 손을 눈을 그리고 입을 다시 찾을 수 있을 것만 같다.
잘 쓰지 않아도 된다. 어떤 의미를 담은 진중한 글이 아니어도 된다. 그저 편안한 글이면 좋겠다. 그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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