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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마음 공방

100-3. 내 가슴에서 지옥을 꺼내고 보니

by 윈디 windy 2022. 1.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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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생, 우창헌
내 가슴에서 지옥을 꺼내고 보니
네모난 작은 새장이어서
나는 앞발로 툭툭 쳐보며 굴려보며
베란다 철창에 쪼그려앉아 햇빛을 쪼이는데

지옥은 참 작기도 하구나

꺼내놓고 보니, 내가 삼킨 새들이 지은
전생이구나
나는 배가 쑥 꺼진 채로
무릎을 세우고 앉아서
점점 투명하여 밝게 비추는 이 봄

저 세상이 가깝게 보이는구나

평생을 소리없이 지옥의 내장 하나를 만들고
그것을 꺼내어보는 일
앞발로 굴려보며 공놀이처럼

무료하게 맑은 나이를 보내어보는 것
피 묻은 그것,

내가 살던 집에서 나와보는 것,

너무 밝구나 너무 밝구나 내가 지워지는구나

-내 가슴에서 지옥을 꺼내고 보니, 이윤설-


나는 고민을 사서 하는 사람이었다. 고민이 습관인 사람. 그래서 매사 심각하고 짜증이 많던 사람. 늘 예민해서 살이 잘 붙지 않는 사람. 소화제를 달고 사는 사람. 숱한 고민들과 밤새 이야기를 나누다 결국 한숨도 못 자 눈 밑이 쾡한 사람. 그럼에도 남들에겐 괜찮다고 부러 여유있는 척하던 사람. 그게 나였다.

그런데 내가 고민이 많은 데는 다 그만한 사정이 있다. 일이 잘 풀리지 않아 전전긍긍 앓다보면 ‘에이구. 안쓰러운 것. 옛다! 떡이나 먹어라!’는!’ 식의 뜻밖의 행운이 찾아와 벼랑 끝에 내몰린 나를 구해주었던 거다! 그래. 나는 그게 행운인 줄 알았다. 그래서 일이 엉망이고 도저히 해결책이 보이지 않은 때에도 내심 ‘이번엔 또 어떤 식의 행운이 나를 구해주려나!’ 기대하곤 했다. 그리고 나의 기대에 부응하기라도 하듯 나는 위기를 가장한 행운 덕분에 꼴까닥 넘어갈 뻔한 목숨(?)을 여러 번 구했다. 그래서 나는 내가 운이 참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깨달아버렸다. 나는 운이 좋은 사람이라기보다 그저 위기 속에서 구사일생 살아나는 인생을 사는 데 익숙한 인간일 뿐이었다. ‘도대체 왜! 나는 이렇게 뭐든 쉽게 가는 법이 없는 건데!’라고 울분을 터뜨렸지만 실은 그렇게 사는 게 습관인 사람이었던 거다. 나는 내가 만들어놓은 지옥 속에 나를 가둬두고 위기와 행운을 마치 짝꿍처럼 짝지어 내 인생을 길들여왔다. 나에게 행운은 위기가 있으므로 찾아오는 선물이었다. 실제로 내 방 벽면엔 ‘위기는 곧 행운의 다른 말’이란 문장이 적혀있다. 맙소사!

이러니 내가 누구를 탓할 수 있겠니. 누구를 원망할 수 있겠니. 다 내가 자초한 것을.

나를 오랫동안 길들여온 습관 하나를 꺼내어 본다. 나를 괴롭게도 하고 살리기도 했던 습관 하나를 꺼내 찬찬히 들여다본다. 아이구. 참말로 힘들었겠다. 정말 애썼네. 안쓰러움에 마음이 떨린다. 그렇게 나는 내가 아주 오래도록 살던 집에서 나와본다.

아! 너무 밝구나 너무 밝구나. 나를 괴롭히던 걱정들이 하얗게 지워지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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