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대 대통령 선거 투표를 마쳤다. 솔직히 말해서 마지막까지 누구에게 표를 줘야 하나 고민이 많았다. 나의 한 표가 대한민국의 미래를 송두리째 뒤바꾸는 힘이 있겠냐만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스스로에게 떳떳한 한 표를 행사하고 싶었다. 결국 최종 선택을 하고 투표소를 빠져나왔다. 날씨가 미치도록 좋았다. 봄이었다.
우리 집에서 15분 정도 걸어가면 안산에서 꽤 오랫동안 터를 잡은 유명한 식당이 하나 있다. '훈장골'이라고 돼지갈비를 파는 식당인데 갈비탕, 냉면 또한 유명해서 가끔 들려 사 먹곤 했다. 투표를 하고 날씨는 너무 좋고 이대로 집에 들어가기 아쉬워 발길을 돌려 점심을 먹으러 훈장골에 갔다. 휴일이라지만 이미 우리 앞으로 3팀의 대기가 있었다. 다행히 많이 기다리지 않고 자리를 안내받았다.
엄마와 나는 대왕갈비탕을 주문했다. 외식을 하면 열에 일곱은 '그저 그래' 만족을 모르는 엄마가 오늘은 유독 만족해하며 맛있게 식사를 하는 모습을 보며 먹지 않아도 배부른 기분이었다. 밥을 다 먹고 계산을 치르고 가게를 빠져나오자 엄마가 말끝을 흐리며 "공휴일이라고 식구들이랑 다같이 나와 점심도 먹는데..." 말끝을 흐리며 시무룩해했다. 나는 아빠 얘기를 하는가 싶어서 "엄마랑 나. 이렇게 우리 가족도 투표도 하고 맛있는 것도 먹으니 얼마나 좋아." 말했더니 "그게 아니고. 니 외할머니 말이다. 이런 날 혼자 있을 노인네들 생각하니 속이 끓어서 그런다." 하며 속상해하셨다. 나는 평소에 엄마를 걱정하고 엄마는 외할머니를 걱정한다. 엄마를 향한 애틋함이 닮은 우리는 역시 모녀지간이 맞는가 보다.
배가 불러 집 앞 개천을 따라 좀 걸었다. 물고기가 많은 천이라 때가 되면 철새들이 모여 살고 또 흩어지곤 하는 곳이다. 얼마전 노랑이 아기 오리 세 마리가 물장난을 치며 노는 모습을 보았는데 아쉽게도 오늘은 보지 못했다. 바람에 옷자락이 펄럭였지만 한기가 가신 따뜻한 바람이었다. 강아지를 데리고 나온 사람들, 아기 손을 잡고 나온 엄마 아빠,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마스크로도 다 가려지지 않는 환한 웃음들.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따뜻함이 꽉 차오르는 봄의 거리를 엄마와 함께 거닐었다.
머지 않은 가까운 날에 엄마와 나 그리고 외할머니와 함께 맛있는 식사도 하고 좋은 풍경도 보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야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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