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내마음 공방

100-42. 나무를 모르는 나무

by 윈디 windy 2022. 2. 13.
728x90
반응형
SMALL

어린왕자 '바오밥나무'

바람이 몹시 분다.
이름도 모르는 벌판에서
나무가 뭔지도 모르면서
나무로 살았다.

저 멀리 벌판 끝으로 
눈물이 가득 들어찬 눈동자들이
눈물의 의미도 모르면서
반짝반짝 글썽인다.

여기는 어디일까.

나무는 생각하는 법도 모르면서
제목도 모르는 책 앞에서 턱을 괸다.

위층 어딘가에서
웅얼웅얼 아기를 달래는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이제 곧 익숙해질 거야.
살아서 잠드는 일에 대해
살아서 깨어나는 일에 대해
이름도 모르는 벌판의 낯선 태양과
살아서 마주치는 일에 대해.

바람이 몹시 분다.
바람이 뭔지도 모르면서
두려움 없이 바람 소리를 듣는다.
나무가 뭔지도 모르면서
나무로 살아온 것처럼.

눈동자들은 벌판의 끝으로 굴러가 있고
눈물의 의미도 모르면서 자꾸만
반짝반짝 글썽인다. 

- 나무를 모르는 나무, 황성희 -

 

 나의 학창시절 우리 엄마는 매일 새벽 다섯 시에 일어나 나와 동생의 도시락을 싸고 네 식구가 먹을 아침을 준비했다. 그리고 예쁘게 단장을 하고 나와 동생보다 먼저 집을 나섰다. 그때 나는 세상의 모든 엄마는 일찍 일어나고 뭐든 척척 해내는 사람인 줄 알았다.

 우리 아빠는 중장비업 종사자로 보통 새벽 4시 혹은 5시에 출근을 했다. 퇴근 후엔 소주 한 잔에 저녁을 든든히 먹고 누구보다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그때 나는 세상의 모든 아빠는 일찍 일어나는 대신 집에 오면 누구보다 일찍 잠드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내 나이 이제 서른 후반, 내가 열세 살일 때 우리 엄마 나이가 지금의 내 나이었다. 지금 나에게 초등학교 6학년 딸이 있다고 가정해본다. 으악! 너무 징그럽고 상상도 안된다. 절친한 대학 친구 중 20대 초반에 결혼을 한 친구가 있다. 그 친구의 첫 딸이 초등학교 5학년이다. 나에게 그 친구는 여전히 대학시절의 천진하고 장난스러운 모습 그대로인데, 새벽 일찍 일어나 김치찌개를 끓여놓고 출근했다는 친구의 말에 불현듯 우리 엄마의 모습이 떠올랐던 건 내 친구 역시 엄마이기 때문일 것이다. 

 '부모'라는 역할을 배우고 시험쳐서 자격증을 따는 것도 아닌데 우리 엄마 아빠는 그리고 내 친구는 어떻게 엄마가 되고 아빠가 됐을까. 언젠가 엄마에게 "엄마는 그 어린 나이에 우리를 어떻게 키웠대." 농담처럼 물어본 적이 있다. 그때 우리 엄마 말이 "내가 뭘 알았겠냐. 그냥 어찌어찌 키우다 보니 이래 다 커버렸네." 했다.

 그냥 어찌어찌 낳고 키웠다기엔 우리 엄마가 또 아빠가 놀라고, 두렵고, 외롭고, 힘들고 그럼에도 견뎌야 했던 순간들이 참 많았을 것이다. 

 

 부모가 된다는게 어떤 의미인지도 모를 스물 하나, 둘의 어린 나이에 나의 엄마 그리고 아빠가 되어 지금껏 사랑으로 보살펴주신 우리 부모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728x90
반응형
LIST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