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먹고 싶다고 해서 사 왔는데 말을 꼭 그렇게 해야겠어?"
시작은 이랬다. 저녁으로 불고기버거를 먹고 싶다는 엄마를 위해 칼바람을 뚫고 밖으로 나갔다. 사실 볼일이 있어 나선 길이었지만 목적지보다 조금 더 먼 곳의 햄버거 가게를 부러 가는 것도 사실이었다. 오랜만에 작업복이 아닌 외출복을 입었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괜히 마음이 설레고 두근거렸다.
집에서 도보로 15분 거리의 버거킹에 도착했다. 엄마가 먹고 싶다는 불고기버거 세트를 주문한 뒤 순서를 기다렸다. 주변을 둘러보니 중장년층의 남성 손님들이 상당히 많아서 적잖이 놀랐다. 선입견이겠지만 아버지의 저녁은 따끈한 국밥에 흰쌀밥을 말아 깍두기와 함께 먹는 이미지가 마치 진실처럼 뇌리에 박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아무튼 주문한 햄버거를 받아 간단히 볼 일을 마치고 집으로 갔다.
엄마는 햄버거를 받아들자마자 상을 펴고 자리에 앉았다. "엄마 맛있어?" 물어보니 고개를 끄덕이며 "괜찮아"라고 답했다. 그리고 햄버거 하나를 다 먹었을 즈음 "그런데 좀 짜다. 차라리 치킨 버거 먹을 걸 그랬다."
엄마의 그 말이 왜 그렇게 짜증이 났는지. 나도 모르게 버럭 소리를 질렀다. "말을 왜 꼭 그렇게 하냐! 먹고 싶다고 해서 사다 준 사람 생각도 안 하고!" 그러자 엄마도 "무슨 말을 못 해! 맛없다고 말도 못 하냐?"
생각해보면 엄마 말도 맞다. 맛없는 걸 맛있다고 할 수는 없는 거니까. 다 아는데도 왜 화가 났는지 모를 일이다. 그래서 그냥 "나는 엄마를 위해 저기 먼 곳까지 다녀왔는데, 엄마가 맛없다고 말하니 힘 빠져서 그러지."라고 했고 엄마도 그제야 미안했는지 "몰랐지. 나는. 담부턴 치킨버거 먹자." 이렇게 대화가 대충 마무리됐다.
이 글을 쓰기 전, 남자 친구에게 오늘 같은 상황이라면 어떻게 대답하는 게 정답일지 물었다. (이미 나에겐 정답이 있었던 거다.) 아래는 남자 친구와의 대화 내용이다.
그렇다. 남자 친구의 대답은 다시 사 오는 거다. 이 망할 남자친구의 대답에 비하면 엄마의 '맛없어'는 귀여운 투정일뿐이다. 저 대화의 뒷 이야기는 어쨌든 남자친구가 담배 한 대도 필겸 직접 나가 사오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마음속 정답을 품고 대화를 나누면 상대의 말에 서운해진다.'
오늘 내가 배운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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