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우 책상 앞에 앉았다. 피곤한 밤이다. 집에 오자마자 뜨거운 물로 샤워를 했다. 잘 마른 수건으로 물기를 닦아내자 이내 몸 구석구석 간지러워지기 시작했다. 서둘러 보습 크림을 발라주었다. 손 발이 퉁퉁 부었다. 온몸 안 아픈 곳이 없다. 하루 종일 허기지고 힘들었을 날 위해 어젯밤 새벽 배송으로 주문해 둔 마라탕 밀키트로 맛있는 저녁상을 차렸다. 분명 레시피가 있었는데 그냥 큰 냄비에 6가지 재료를 한꺼번에 떼려 넣고 팔팔 끓였다. 지난번 사 둔 분모자 한 봉지도 함께 넣었다. 솔직히 몸이 피곤하니 이마저도 귀찮았다. 그냥 시켜먹을 걸 그랬나 조금 후회가 됐다.
그러나 막상 잘 끓인 마라탕을 한 수저 떠 먹고 나자 저절로 콧노래가 흘러나왔다. 대기업의 밀키트는 평균 이상의 맛을 자랑했다. 누군지 모르겠지만 밀키트를 생각해낸 사람은 천재가 틀림없다. 음식엔 영 소질이 없는 나조차도 이렇게 훌륭한(?) 맛을 낼 수 있으니 말이다. 시원한 맥주 한 캔에 칼칼한 마라탕 한 냄비를 뚝딱 해치웠다. 배가 부르니 온몸이 노곤 노곤해지면서 그대로 내일 아침까지 잠들면 딱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다. 나는 지금 피곤이라는 끈적한 유혹을 뿌리치고 지금 이 순간 책상 앞에 앉아 29일 차 백백 쓰기를 실천 중이다. 상당히 억지스러운, 일기같은, 명확하지 않은, 수다스러운, 더불어 쓸데도 없는 이야기를 주절거리는 중이다.
예쁜 사진이나 그림을 찾아보고 싶었는데, 오늘과 딱 어울리는 시 한 편도 찾아보고 싶었는데 의욕 보다 졸음이 앞선다. 속수무책이다. 그래도 오늘도 나와의 약속을 지킬 수 있어 정말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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