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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마음 공방

100-17. 걱정하지 마

by 윈디 windy 2022. 1.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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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난 것도 아니고 죽은 것도 아니어서
우연히 연기처럼 모였다 흩어지는 걸까

오늘도 北海의 물고기 하나
커다란 새 한 마리로 솟구쳐 오르고

걱정하지 마 걱정하지 마
속살 속살 눈 내리는 밤
멀리서 침묵하고 있는 대상이
이미 우리 가운데 그윽히 스며 있다.

- 걱정하지 마 걱정하지 마, 최승자 -

 

 오전 내내 하늘이 새까맣더니 어느새 하얀 눈이 소복소복 내리기 시작했다. 바람에 흩날리는 눈송이들은 내가 발 딛고 선 곳과 저 하늘 끝 사이의 어디쯤을 훨훨 날으며 온 세상을 하얗게 물들이고 있었다. 눈 내리는 풍경은 언제 보아도 마음을 두근거리게 한다. 

 하얀 눈이 소담스레 내려 않은 길 위에 내 발자국 하나 남겨본다.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하고 첫 발을 내디뎠을 때가 이런 기분이었을까. 한 발 자국. 또 한 발 자국. 아무도 지나지 않은 길을 나 홀로 천천히 걷는다. 사방이 고요함으로 꽉 채워진다. 

 

 어렸을 적엔 눈이 오면 마냥 좋았다. 친구들이랑 눈싸움 했던 기억, 눈사람 만들었던 기억, 경사진 곳에 포대자루 하나 들고 올라가 눈썰매를 탔던 기억, 하얀 눈을 먹으면 무슨 맛일까 기대하며(설탕처럼 달달할 거라 생각했다) 혀를 대 보았던 기억 등등 유년기 시절의 눈은 온통 포근하고 따뜻한 기억뿐이다.

 철이 들 무렵부턴 눈이 오면 한숨이 푹 쉬어졌다. 벌써부터 예상이 되는 통학 버스 전쟁에서부터 눈 녹은 자리마다 검게 웅덩이진 길을 요리조리 피해 다녀야 하는 피로감으로 눈 오는 게 귀찮고 싫었다.

 제2의 삶을 만끽 중인 2022년 1월의 눈은 그저 반갑기만 하다. 단조로운 일상을 깨는 뜻밖의 선물 같다. 오늘도 고개 푹 숙이고 흩어진 마음에 이리저리 휘청이며(유난히 생각이 많은 날이었다) 단순 업무를 반복하고 있을 때,

 

- 사원 여러분! 지금 밖에 눈이 내리고 있습니다~ 사원 여러분께서 열심히 일하고 계신 중에 눈이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관리자님의 멘트에 고개를 들어 창밖을 보았다. 뽀얀 눈송이가 이리저리 흩날리는 게 보였다. 잠시 쉬자 싶어 화장실을 가기 위해 현장을 빠져나왔다. 벌써 바닥엔 눈이 쌓이기 시작했고 길은 제법 미끄러웠다. 그래도 좋았다. 문득 내리는 눈을 바라보며 뜨거운 커피 한 잔을 마시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문득 내리는 눈을 바라보며 좋은 사람과 이 풍경을 함께 볼 수 있다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짧은 여유를 마치고 다시 현장으로 복귀했다. 어지러웠던 마음이 하얗게 내려앉았다. 어느새 푹 숙여진 고개에 마음까지 겸손해진 오늘은, 눈이 내려 온통 하얗고 예쁜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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