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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마음 공방

100-89. 가족의 밥상

by 윈디 windy 2022. 4.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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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몸이 편하지 않다. 온몸 안 쑤시는 곳이 없다. 감기몸살인지 자꾸 춥고 코도 막히고 목도 칼칼하다. 혹시 코로나인가 싶은 걱정도 들었지만 삼겹살과 미나리를 굽고 또 미나리를 새콤하게 무쳐 한 입 먹는 순간, 코로나가 아님을 확신할 수 있었다. 너무 맛있었다. 

 

 몸이 아파 조퇴를 하고 하루종일 누워서 잤다. 일어나 보니 오후 4시 반이었다. 30분 뒤 아빠가 퇴근해 돌아왔고 우리는 정말 오랜만에(아마 1년은 된 것 같다) 다 같이 한 상에 둘러앉아 삼겹살을 구워 먹었다. 오늘 아침 아빠가 출근하면서 엄마에게 카드를 주며 삼겹살을 사두라고 했다. 낮에 엄마와 함께 마트에 장을 보러 가면서 혹시 아빠가 또 무슨 말도 안 되는 말을 하는 건 아닐까 걱정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아빠는 별말이 없었다. 아직 서먹함이 채 가시지 않은 밥상 앞에서  필요한 대화만 주고받을 뿐이었지만 이 정도도 우리에겐 큰 발전이었다. 

 

 아빠는 밥을 다 먹고 자전거를 타러 나갔고 엄마는 이제 아빠가 꼬리를 내린 것 같다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나 역시 이 상황이 다행이다 싶었다. 큰 문제도 없었고 삼겹살과 미나리는 너무 맛있었으니까. 

 예전의 우리라면 두시간은 밥상을 펼쳐놓고 끝도 없이 이야기를 나누며 고기를 굽고 마지막엔 밥까지 볶아 먹은 뒤 과일로 입가심을 했을 거다. 그때에 비하면 대화는 단절됐고, 감정의 골은 깊다. 지난 4~5년의 갈등이 어떻게 한순간에 다 풀어지랴. 하지만 그렇게 밉고 원망스러운 존재도 함께 둘러앉아 수저를 나누며 밥을 함께 먹을 수 있고 또 그로 인해 미움이 누그러진다는 게 참 묘하기만 하다. 미워도 어쩔 수 없는 가족이기 때문일까.  

 

 소망이 있다면 그냥 모두가 다 마음 편하게 살면 좋겠다. 미워하는 마음, 탓하는 마음, 원망하는 마음 다 내려놓고 그냥 행복하면 좋겠다. 새콤달콤한 미나리 무침 그리고 고소한 기름으로 구운 미나리, 비계가 쫀득한 삼겹살. 다음번 밥상은 오늘보다 좀 더 여유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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