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 즈음 갑자기 현타가 왔다. 오늘 새벽 엄마와 아빠는 서로를 탓하며 크게 다퉜다. 방 안에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그 소리를 듣지 않으려고 기를 썼지만 결국 다 들어버렸다. 서로를 할퀴고 탓하는 원망의 에너지가 내 방안까지 스며들었다. 마음이 답답했다. 도망치듯 일을 하러 나갔고 오전까지만 해도 마음을 잘 추스른다고 생각했는데, 점심시간이 되자 갑자기 모든 게 너무 끔찍하게 싫고 더 이상 뭔가를 해나가고 싶지 않았다. 나는 너무 지친 상태였다. 나도 모르게 엄마를 탓하고 아빠를 탓했다. 탓하는 내가 싫었다. 마음이 너무 괴로워 기도를 했다. 솔직히 아무 소용이 없었다. 그냥 힘들기만 했다. 일을 하다가 눈물이 났다. 3년 전 힘들었을 그때로 다시 되돌아간 것 같아 미칠 것 같았다. 그냥 조퇴하고 집을 가야 할까 생각했다.
그러다 문득 내가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미리 걱정하고 힘들어하고 지쳐한다는 걸 깨달았다. 그걸 깨닫자마자 지금 내게 주어진 기쁨, 행복을 떠올려보기 시작했다. 나는 슬플 때나 기쁠 때 눈물을 흘릴 수 있는 예쁜 눈이 있다. 몸이 건강해서 이 무거운 박스도 거뜬히 들 수 있다. 아무리 힘들어도 나를 살게 하는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 내 통장에는 지금 당장 조퇴하고 뛰쳐나가서 맥주 열 캔도 더 사 먹을 수 있는 돈이 있다. 지금 나는 일할 수 있는 직장이 있다. 지금 나는 안전하다. 이렇게 하나하나 속으로 되뇌다 보니 미움, 원망, 두려움의 감정이 차분히 가라앉는 게 느껴졌다. 마음이 평온해지자 마자 스스로에게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결국 해결해야 할 문제가 온 것 뿐이었다. 직면하는 게 쉽지 않아 미뤄뒀을 뿐이다. 나는 이미 직감하고 있었다. 엄마를 탓할 필요도 없었다. 좀 더 빨리 터졌느냐 늦게 터졌느냐, 시기 차이일 뿐이었다. 그렇게 생각하고 받아들이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해가 뜨기 직전이 가장 깜깜하고 어두운 거야. 이제 곧 나를 위한 해가 뜰 거야. 이제 내 차례야!" 스스로에게 주문을 걸 듯 몇 번을 되뇌었는지 모른다.
마음도 청소가 필요하다. 여태 괜찮다고 꾹꾹 눌러뒀던 감정들이 오늘에야 터진 것 뿐이다. 그러니 불안하고 원망스러운 감정은 툭 털어내고 이제 다시 내가 원하는 인생 속으로 들어가자. 다시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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