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내내 하늘이 흐렸다. 비가 오면 딱 좋을 그런 날씨였다. 그리고 마침내 하늘이 까매지더니 후드득,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나는 우산이 없었다. 버스 정류장에서 집까지는 걸어서 5분, 뛰면 2~3분이었다. 뛸까? 걸을까? 잠시 고민했지만 그냥 걸었다. 피하지 않아도 좋았다. 차라리 비가 내리니 살 것 같았다.
비가 내리는 사방의 공기가 퍽 따뜻해서 나도 모르게 '봄비구나' 생각했다. 이른새벽과 늦은 저녁, 회사와 집을 오가는 단조로운 일상에서 계절의 변화를 경험하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오늘은 달랐다. 천천히 내리는 봄비에 젖어들며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고 있음을 직감했다. 그리고 그 순간, 나도 모르게 내 삶에도 봄비만큼이나 따뜻한 변화가 와주기를 간절히 기도했다.
소고기가 듬뿍 들어간 미역국을 두 그릇이나 먹고, 후식으로 한라봉 한 알을 까 먹었다. 그 후 한 시간이 채 지나기도 전에 갓 구운 고구마를 두어 개 집어 먹었다. 배가 터질 듯 빵빵했다. 그리고 오랜만에 남자 친구와 통화를 했다. 서로 바빠 문자만 나누기 일쑤였는데 오늘은 꽤 오랜 시간 서로의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시답잖은 농담뿐이었지만 그걸로도 참 행복하고 편안했다. "사랑해. 잘 자!" 늘 그랬듯 마지막 인사를 나누며 우리의 평온한 밤을 위해 기도했다.
지금도 밖에는 비가 내리고 있다. 추적추적 차분히 내려앉는 빗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그 다정하고도 조용한 걸음걸음에 내 마음도 한없이 고요해진다. 따뜻한 봄비가 내리는 이 밤. 오늘은 왠지 무척 행복한 꿈을 꿀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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