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베란다는 엄마가 사 온 것, 주워온 것, 받아온 것 등등 온갖 화분들로 한가득이다. 그 화분 하나하나엔 또 내가 잘 알지 못하는 이름을 가진 식물들이 자라고 있다. 꽃을 피운 화분, 아직 봉오리만 맺힌 화분, 사시사철 푸르기만 한 화분 등등 나는 하나도 관심 없지만 엄마는 베란다에 자리 잡은 식물들의 작은 변화에도 크게 기뻐하며 내게도 소식을 전한다. 오늘도 그런 날 중 하루였다. 이름이 생각나지 않지만(식물의 이름은 너무 어렵다) 어쨌든 같은 식물의 화분이 두 개인 모양이었다. 원래 그 식물은 봄에 꽃을 피우는 게 순리인데 A화분에 자리 잡은 식물은 겨울에 봉오리를 맺어 봄에는 썩어 꽃을 피우지 못했고 B화분에 자리 잡은 식물은 이제 봉오리를 맺어 꽃을 피울 준비를 한다고 했다. 엄마는 때를 못 맞추고 일찍 봉오리를 맺은 A화분을 병신이라고 했다. 나에게 한 말도 아닌데 괜히 서운해서 "엄마. 쟤들이 다 듣고 있다! 실수할 수도 있지. 괜찮다고. 그래도 사랑한다고 말해줘야지!" 말했다. 엄마는 콧방귀를 뀌며 "제 때도 모르고 아무 때나 봉오리를 맺고 썩었는데 그게 병신이 아니면 뭐니?"라며 너무 이른 봉우리를 맺은 A화분을 나무랐다. 가까이 가서 A화분을 살펴보니 정말로 봉우리까 까맣게 썩어 있었다. 마음이 너무 아팠다.
모든 식물은 씨앗을 심으면 싹이 움트고 줄기를 올리고 잎이 나고 봉오리를 맺고 꽃을 피우고 또 꽃을 떨구고 열매를 맺는다. 그 과정을 무리 없이 순리대로 따라가면 건강한 꽃과 열매를 맺지만 그렇지 못하면 초라한 꽃을 피우거나 아니면 꽃을 피우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꼭 건강한 꽃과 탐스러운 열매를 맺은 식물만이 옳은 거고, 꽃을 피우지 못하거나 피웠다 해도 볼품이 없다면 그 식물은 틀린 걸까. 비록 이번엔 봉우리가 썩었지만 잘 보살펴준다면 내년에는 예쁜 꽃을 피울 수 있지 않을까. 까맣게 썩은 봉우리에 자꾸만 눈길이 같다. 손끝으로 그 봉우리를 매만지며 괜찮다고. 올해는 피우지 못했지만 내년에는 꼭 예쁜 꽃을 피우면 된다고 말해주었다. 베란다를 나와 출근 준비를 했다. 오늘은 방과 후 수업이 있는 날이었다. 따뜻하고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고 거울 앞에 서서 옷매무새를 다듬었다. 눈이 닿은 거울 속 나를 향해 중얼거렸다. 괜찮다. 좀 늦더라도 나만의 예쁜 꽃을 피우면 된다. 거울 속 내가 활짝 웃는다. 그 웃는 얼굴이 괜찮아 보여서 마음이 놓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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